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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준비

교보생명 vs. 현대카드

행복한 고민일까..?
교보생명 vs. 현대카드.

취업 준비를 하면서는, 그러니까 면접을 보러 다니면서는,
일단, 회사의 건물에 들어서면 숨이 벅차오르면서 '여기서 일하고 싶다'고 백만번 생각했다.
회사 뺏지를 달고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고,
라디오에서 하루에도 수 백번씩 들려오는, '회사 때려치고 싶다, 회사 생활 힘들다' 등등의 말 따위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백수가 되는 상황과, 복수로 합격하는 상황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 후자에 대해서는 생각할 겨를이 거의 없었고 생각도 많이 해보지 않았다.
그저 버스 안에서 가끔 미소를 짓는 정도..?
그러나, 지금은 후자의 상황.

처음에는, 행복해서 어쩔 줄 몰랐다가, 지금은 혼란스럽고 공허하다.
지금 이 혼란스럽고 공허한 마음은 다른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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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을 찾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다.
1. 부모님께 상의.
2. 금융 계통의 지인에게 상의.
3. 아무나 붙잡고 상의.
4. 게시판에 문의.
5. 결국 취뽀에 문의.
6. 두 곳 모두 OT에 참석하기.

그리고, 오늘 교보 OT에 참석하면서 답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1. OT
100명이 넘는 '잘난' 사람들 속에서 여기서 친한 사람을 찾아야 한다는 압박과 멍청한 벙어리가 되어선 안된다는 압박 속에 왠지 모를 불안함이 있었다. 그리고, 끊임없이 미소를 지었고, 나는 운동화를 갖고오지 않아서 계속 구두를 신고 있었다. 왠지 모를 불편함. 어쩌면, 당연한 불편함.

<정주영>이라는 책을 읽으며 오늘은 면접 때와는 다른 루트를 시험해 딱 맞게 도착한 교보생명 OT.
10명 남짓한 사람들. 왠지 나보다 딱히 잘나 보이는 것은 없는 사람들. 말 한 마디면 금방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은 편안함이 느껴졌다. 왠지, 편안한 사람들과 광화문에 위치한 이 곳에서 평생 일하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2. 식사
말로만 듣던 청담동 사거리.
'구루메 에오'라는 어느나라 말인지도 모를 식당 이름.
인터넷에 검색하면 나오는 유명한 쉐프(개인적으로 쉐프란 말이 싫다).
한끼 6만원짜리 식사와, 와인.
GENESIS와 코드 그린.

교보생명 근처의 고깃집.
만두 칼국수 전골.
자신에게 술을 따르지 않는(?) '교보 남자들'에게 교태를 부리는 식당 주인으로 추측되는 아줌마.
계란과 멸치를 서비스로 달라던 부사장님, 실장님, 팀장님과 만두는 넉넉히 달라는 협상이 결렬되어 결국 추가해버린 만두.

어쩌면, 정겨운 교보 생명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왠지 식사를 하면서 나는 실망을 한 것 같다.
부사장님과 팀장님께 칭얼대던 아줌마가 싫었고,
내가 언젠가 식사 대접을 할 때, 고깃집이 아닌 이름 모를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마시는 모습을 상상하고 싶었다.

현대카드.
이미지 마케팅에 꽤나 성공한 회사 중 하나라고 한다. 고객에게도 지원자에게도.
어쩌면, 그 날의 식사도 최 실장님의 평소 취향이 아니라 어쩌면 마케팅의 일종일지도 모르겠다.
10년 후, 나 이 결정을 후회하지 않고 싶은데, 여전히 자신이 없다.

10년동안 단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던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않은 길'이라는 시가 요즘 생각난다.
고등학교 때는, 1. 시를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었고, 2. 가지 않은 길을 빨리 되돌아서 다시 가보면 된다고 생각했다. 시험을 보려면 공감을 해야하지만, 그래서 그런 척 했지만 별로 공감할 수 없었다.

10년 쯤 지난 지금에서야 로버트 프로스트와 시를 아주 약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전제) 가지 않은 길로 되돌아가기 없음.